수기 /

우리가 1형당뇨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유나

2006년 가을,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던 내 아이가 밤새 보채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소아과의 감기약이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의 직감으로 느끼고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케톤산증으로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이틀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녀린 팔다리와 이마에 링거 줄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이를 보며 우리 부부는 제발 깨어나기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만 반복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지새고 아이의 눈이 떠지는 순간, 나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음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는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터트렸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췌장에서 인슐린이 잘 분비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인슐린 주사를 투여해야 했고 혈당 상태를 알아보기 위하여 하루에 십여 차례 손끝에서 채혈을 해야 했다. 수유할 때 어느 정도의 양을 먹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모유도 유축해서 먹일 수 밖에 없었다. 인슐린 주사를 놓을 때마다 아이의 허벅지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고 혈당체크 때문에 손끝은 허물이 벗겨지고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아이의 혈당 흐름을 알아야 인슐린 주사의 적정 용량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2시간 간격으로 혈당체크를 해야만 했고 그래서 밤에 2시간 이상 숙면을 취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혹시나 깨지 못하면 아이의 혈당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편안하게 누워 잠들지 못하고 의자에 기대 자거나 새우자세로 업드려 밤을 지샜다. 비록 몸이 조금 힘들지라도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우리 부부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으나 매일 지속되는 피로 누적에 우리 부부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과연 우리가 얼마나 이러한 생활을 버틸 수 있을지 암담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혈당관리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혈당과 고혈당이 반복되어 혈당체크를 더욱 자주 할 수 밖에 없었고 고사리 손가락 끝에서 더 이상 피를 내기가 어려울 때면 발가락에서도 피를 내어 혈당을 확인해야 했다. 아이가 잠을 잘 때에도 혈당이 낮으면 자는 아이를 깨워 먹여야 했고 혈당이 높으면 인슐린 주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 조차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기에 깨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도 따라 우는 날이 허다했다.

특히 모유를 먹는 아이가 1형당뇨인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이렇게 어린 아이는 처음이라서 혈당잡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였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 혈당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 보려고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비슷한 또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1형당뇨 아이들은 식후 혈당을 적정 수치로 유지하기 위하여 운동을 매우 중요하게 강조하는데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젖먹이 아기를 운동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걸음마 뿐만 아니라 아직 말조차 할 수 없는 아이였기에 저혈당 상태가 되어도 본인의 몸 상태를 부모에게 표현 할 수 없어 아이가 울기만 해도 혈당 체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혈당을 관리하는데 필수적인 주사기의 경우 눈금이 0.5단위씩만 변경이 되었는데 아이의 몸집이 너무 작아 한 번에 요구되는 인슐린양이 0.1~0.2단위 정도여서 인슐린양을 조정하는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이가 어서 커서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걸음마를 떼서 운동을 할 수만 있다면, 어서 커서 필요한 인슐린양이 늘어나 주사 바늘 눈금에 따라 인슐린을 조정할 수만 있다면 이 어려움들이 잘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다.

그런데 아이가 크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혈당체크와 주사를 맞기 싫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고 혈당 흐름에 따라 간식양을 조절하려고 하면 더 먹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특히 사과를 좋아하던 아이는 사과를 많이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늘 달고 다녔고 특히 기름진 음식을 먹이는 날 밤에는 밤새 오르는 혈당에 추가 주사를 해야 했다. 부모로써 아이에게 음식을 제한시킨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고 늘 혈당관리와 아이의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렸다. 특히 아이가 유치원서 점심식사와 간식을 먹고 오기 시작하면서 혈당을 잡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매일 식단표를 확인하고 점심식사 주사량을 정해도 혈당은 끝없이 요동쳤고 추가 주사를 하러 유치원을 쫒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유치원 간식이 너무 과한 날에는 선생님께 부탁해서 조금만 먹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그런 날에는 아이가 집에 돌아와 혈당관리를 하기 싫다고 떼를 썼다. 혈당관리를 잘 하자니 아이의 마음이 다치는 순간들이 생겼고 그런 아이의 마음이 삐뚤어지지 않게 다독이는 것도 큰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힘든 우리의 일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피부에 센서를 부착하기만 하면 손끝에서 피를 뽑지 않아도 혈당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연속혈당측정기에 대한 소식이었다. 그런데 당시에 이러한 의료기기는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직접 해외에서 국내에 들여오기에는 구입 및 통관 절차가 너무나 복잡하여 개인이 구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이 어려운 절차를 극복하고 처음 기기를 들여온 소명맘을 알게 되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연속혈당측정기 구입을 부탁하게 되었다.

소명맘의 도움으로 연속혈당측정기를 부착하게 되면서 우리의 삶은 180도로 달라지게 되었다. 5분에 한 번씩 혈당을 파악하여 저혈당이나 고혈당이 되었을 경우 알람이 울리기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혈당체크를 위해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되었고 혈당의 흐름을 그래프로 파악하면서 음식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기에 간식을 제한하는 일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아이가 소풍을 가도 누군가 따라갈 필요가 없었고 유치원에서 간식량을 줄일 필요도 없었다.

연속혈당측정기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여유로워졌는데 소명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어 마침내 APS와 인슐린펌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연속혈당측정기 덕분에 손끝 채혈에서 벗어났다면 APS와 인슐림펌프의 연동으로 우리 아이는 비로소 주사기로부터 해방되게 되었다. 특히 실시간으로 변하는 혈당에 따라 인슐린펌프 스스로 인슐린 양을 조절하였기에 저혈당과 고혈당의 상황에 노출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어떠한 음식을 먹어도 아이의 혈당을 잘 잡을 수 있었다. 십여년동안 혈당체크와 인슐린 주사의 어려움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어느덧 중3이 된 내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는 학창 시절을 누리고 있다.

당시에 우리는 내 아이의 혈당관리에만 급급하였는데 소명맘의 경우 끊임없이 해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고 더욱 좋은 기기를 국내에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1형당뇨 아이들이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정부와 각종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소명맘의 노력 덕분에 1형당뇨인들에게 필요한 각종 의료기기가 정식으로 국내에 수입되었고 교육기관에서 1형당뇨 아이들이 잘 보살펴질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었다.

이러한 소명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반성하게 되었다. 내 아이의 건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만 사로 잡혀 우리는 큰 나무를 보지 못하였는데 소명맘은 자신의 아이를 관리는 문제를 넘어서 전체 1형당뇨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기에 대한 정보를 찾았고 국회에 찾아가 우리의 어려움이 해소 될 수 있도록 각종 법안 상정을 건의하였으며 1형당뇨아이들이 어려움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교육부에 제시하였고 각종 의료기기의 도입을 위해 식약처에 의견을 개진하였다.

소명맘 덕분에 혈당관리의 어려움 속에서 헤매이던 우리가족은 이제 비당뇨인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기기들은 불완전하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 되어야 하고 아직도 1형당뇨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소명맘이 건네준 조건 없는 도움 덕분에 우리가 편안한 일상을 찾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우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변의 많은 이들을 도와주고 우리 모두의 삶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작으나마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지니며 살아가게 되었다.


수기

김환희

"그럼 주사는 몇일동안 맞으면 되나요?" 제가 대학병원에서 1형당뇨진단을 받고 의사에게 제일 처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고 바보같은 질문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고 모르고 싶었기도 했나 봅니다. 모니터만 보시던 선생님이 의아해 하시면서 "이건 평생 맞는거예요. 평생"이라고...

이태승

내 아이의 1형 진단. 아이가 받을 충격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 등을 생각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참아내며, 조용히 이후의 일들을 알아보고, 차분히 예상하며 관리를 진행했어야 했겠지만 저는 그런 현명한 엄마는 애초에 근처에도 못 가는 사람이었어요. 대번에 무너져 내리고 물색없는 눈물만...

더보기

1형당뇨 회복기 및 적응기

2019년 9월16일 추석부터 기침하던 딸을 아빠와 함께 소아과에 보냈습니다. 진료를 보고 난후 뜻하지않게 폐렴으로 입원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입원후 간단한 피검사에서 혈당수치가 500이 넘는다는 결과를 들었고, 당뇨일수도 있지만 아이가 아파서 일시적으로 혈당이 높을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더보기

심태용

2013년 12월 13일,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께 병원에 좀 데려가 달라고 전화를 드렸다. 꽤 시간이 지난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적잖이 놀라셨는지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1시간도 안되어 도착하셨던 것 같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차에 타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진 분들께서 분주히 이것저것 검사를 시작했고...

더보기

박규형

“아! 나 너무 행복해” 2021년 5월의 어느 오후다. 친구들과 신나게 논 후 집에 온 아이가 사탕을 입에 물며 외친다. 어느 부모나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좋아하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아이의 행복은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다가온다.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것은 3년 전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온 낯선 손님...

더보기

대전연이맘

안녕하세요? 저는 1형 당뇨 1년차가 된 4살 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입니다. 오늘 제가 좋아하는 야구팀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을 10가지를 말씀드려볼게요. 1. 어제 잘 이겼다고 오늘도 이기는 법 없다. 2. 초반에 안타, 홈런 나오고 잘 해도 그 흐름이 끝까지 안갈 수도 있다. 3. 늘 믿었던 4번 타자가 오늘은 꽝일 수 있다...

더보기

그래도 아빠는 널 사랑해..

“여보세요. 민채 아버님되시죠? 가능하시면 오늘 중으로 입원하셔야 할듯해요. 자세한 내용은 입원 수속후 설명 드릴께요.” 여느때와 다름없던 2월의 어느날 걸려온 담당 의사의 전화 한 통으로 우리의 시련이 시작되었지. 생전 듣도 알지도 못하던 의학 용어와 수 많은 수치가 그리 우리에겐 크게 와닿지도 않았지만...

더보기

이지영

안녕하세요. 저는 1형당뇨를 가지고 있는 8살 다온이의 엄마 이지영입니다. 저희 다온이는 6살이 되던 3월에 1형당뇨를 진단받았습니다. 그 해는 다온이 오빠인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정신이 없던 때라 자연스레 둘째 다온이에게는 신경을 덜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다온이가 물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를...

더보기

사춘기에 만난 1형 당뇨

2020년 11월, 1형 당뇨로 진단받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아이에게 앞으로 얼마나 힘겨운 일들이 생길까’ ‘차라리 내가 아팠더라면...’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아이가 1형당뇨 진단을 받은 2020년 11월은 우리 가족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엄청난 슬픔의 시간이었다. 아이가 받아들이기에...

더보기

예지후기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이상하리 만큼 안잊혀 지는 날입니다. 잊을수 없는 날이기도 한 날이기도 합니다. 먹는 것을 참 좋아했고, 행복해 했던 저희집 큰 딸 예지! 초등학생때는 키 크려고 살이 통통할만큼 오르다가, 아이가 키가 크면서 살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고, 중학교 가면서 훌쩍 큰 키로 살이 빠지나 보다, 어릴 때 통통한...

더보기

오유나

2006년 가을, 생후 100일도 채 되지 않던 내 아이가 밤새 보채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소아과의 감기약이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의 직감으로 느끼고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케톤산증으로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이틀 안에 깨어나지 못하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더보기

김수현

저는 그날, 7살이었던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었습니다. “아이고... 혈당이 591 이네요.” 당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도 591이라는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지체없이 인슐린이 투여되었습니다. 30분쯤 지나자 아이의 발그레한 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의 눈이 다시...

더보기

60 넘어서 1형 당뇨환자는
처음입니다

2020년은 환갑인 저에게 통째로 들어 내버리고 싶은 한해이자 특별한 선물을 받은 한해였으며, 그 특별한 선물은 원인도 알 수 없는 췌장에서 인슐린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1형 당뇨 판정이었습니다. 7월 31일, 밤새 물을 들이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아침에 탈진 상태로 인근 병원을 찾아 어제 음식을 짜게 먹었는지 물이...

더보기

`1형당뇨`라는 시련이 우리 가족을 하나로 엮어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주에 사는 송다경, 송태결 가족입니다. 저는 아빠고, 엄마, 큰딸, 큰아들, 막내아들 이렇게 다섯 식구이며 그 중 다경이 태결이 두 아들이 1형당뇨인입니다. 2014년 9월 저희 막내 태결이가 생후 10개월 때쯤 되었을 때 며칠간 기저귀에 소변도 많이 보고 물도 많이 마시고 징징대더니 새벽에 눈이 돌아가고 기절을...

더보기

16살 소녀의 가혹한 겨울이,
따스한 봄이 되기까지

2003년 2월, 열여섯 살 겨울의 끝자락에서 원인 모를 갈증과 어지러움으로 쓰러져 입원했던 나는 케토산증과 함께 ‘1형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다. 눈을 떠보니 이제는 먹을 것을 제한해야 하고 특히 음료나 간식 같은 것을 먹지 못한다고 들었다. 당뇨라는 말을 듣긴 들어봤었는데 내가 1형 당뇨라니. 뚱뚱하지도 않은 내가 왜?...

더보기